*2018년 1학기 커뮤니케이션과사회 수업 과제물

  주제 선정이 매우 자유로웠던 커뮤니케이션과사회 과제에서 영화 <블랙팬서>를 소재로 페이퍼를 작성한 그룹이 둘이나 있었다. 이를 통해 2018년 상반기에 해당 영화가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킨 파급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블랙팬서>는 2018년 5월 31일 기준 누적 관객 5,399,070명을 기록했다. 나 역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본 경험이 있어서 이 비평을 작성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과거 인종차별적이고 남성 주도적이던 구조에서 조금씩 벗어나 인종과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한 사회로 향하고 있다. 18조의 페이퍼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사인 마블 스튜디오에서 <블랙팬서>와 같은 영화를 제작한 일은 흑인 인권과 여성 인권이 충분히 신장하였음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아프리카가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고 흑인과 여성들이 그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낸다는 점이 그 근거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영화가 흑인 인권이나 여성 인권의 신장을 잘 담아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존재한다.

 


  우선, 진중한 히어로가 흑인이고 어리석은 악역이 백인인 이 영화의 설정은 기존에 존재하던 인종적 스테레오 타입을 유토피아적으로 단순히 반전한 것에 불과하다. Robert와 Andrew(2001)의 ‘미국 사회의 인종 표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흑인의 70% 이상이 전문적이고 경영적 위치를 차지하지만, 이는 현실에서의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백인과 연결되던 ‘근면하고 책임감 있는 이미지’와 흑인과 연결되던 ‘게으르고 무책임함’이라는 양극화된 인종적 원형이 반대로 연결된 것이다. <블랙팬서>에서 흑인 주인공 ‘블랙팬서’는 리더십 있고 진지한 권력자로 묘사된다. 반면, 백인 악당 ‘율리시스 클로’는 끊임없이 농담하는 등 가벼운 모습을 보이다가 영화 중반부에 살해당한다. 이는 기존 영화에서 백인과 흑인 캐릭터가 묘사된 방식을 그대로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이러한 위계 묘사는 과거의 대놓고 인종차별적이던 묘사보다 발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 내면으로는 아직도 같은 인종끼리만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인종 간에는 소통이 제한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결국 미국 사회 인종 구조의 경계성을 암시한다. 

 

  영화는 여성 인권의 신장 역시 한정적으로 담아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와칸다는 왕위 장자상속을 원칙으로 한다. 혹은 주먹다짐으로 왕위계승자를 이기면 그 자리를 뺏을 수 있다. 이러한 전근대적 권력 계승의 과정에서 여성이거나 물리적 힘이 모자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핵심 권력으로부터 소외된다. 또한, 정예 군대를 꾸려 전투에 임하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기존에 남성들이 도맡아 해오던 역할을 여성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 영화가 진정한 주체적 여성상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남성을 여성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닌, 여성성과 모성이 수행해온 의미를 부여하는 입장으로”(마정윤, 2015) 묘사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한 영화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있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퓨리오사’는 블랙팬서의 여성 군인들처럼 강인한 전사로 묘사되긴 하지만 그 점이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지 밀러 감독은 그 외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현명함, 자비로움, 순진함 등 여성의 다양한 면을 그리고 있다.(송경원, 2015) 다양한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자신들을 물건 취급하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성 세계에 강하게 맞선다. 그리고 세상을 치유할 힘으로 여성성, 특히 그동안 여성이 수행해왔던 ‘재생산’의 가치를 내세운다. 물론 <블랙팬서>에서 마블 스튜디오의 전작들에 비교해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영화가 여성 인권에 대한 세심한 고민을 담아냈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블랙팬서>는 인종차별주의, 여성차별주의적인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양극화된 이미지를 단순히 반전해 적용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흑인 인권 신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아직 흑인과 백인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전에 존재하던 전쟁 상황에서 남성적 역할을 대체하는 여성의 모습만을 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칭하기에도 부족하다. 특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적극적으로 ‘재생산’이라는 여성적 가치를 강조하는 점과 비교된다. 그렇다면 영화는 앞으로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옳은가? 미디어가 진정으로 인종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평등한 사회를 대변하고자 한다면, 사회적으로 만연한 기존의 억압적인 구조를 재생산하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그리고 ‘흑인’과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 계층이 새로운 영역을 구축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