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친구라면 손꼽을 정도로 몇 안되는데,

그 중에 한 명인 민경이가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그럼 너 연수 마치고 내가 미국 가서 같이 여행해도 좋겠다."

 

뜬금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우리의 미국 여행이 기정사실화됐다.

민경이는 나랑의 여행을 생각해서 한국 돌아오는 비행기 일정도 8월 말로 바꾸었다.

 

어쩐지 빼도 박도 못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가기 싫은 건 아니었다. 가면 누구보다 잘 놀 수 있을 거란 것도 잘 알았다.

그런데도 여행의 시작이라는 항공권 구매를 미루고 또 미뤘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미국여행이다보니 경제적 부담감도 있었고 그 지역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던 것 같다.

또 조금씩 미루다 보니 '이미 늦었다'는 사실 자체로 점점 더 미루게됐다.

 

그렇게 한 학기 내내 민경이 속을 썩이며 티켓 구매를 미루다가

학기를 마치고서야 여행을 한 달 남기고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air china  김포>북경>샌프란시스코

 

드디어 미국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아빠가 공항까지 태워주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인천공항?

-ㅇㅇ

 

난 당연히 인천공항인 줄 알고 있었다.

출발하자마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e-ticket을 확인했고, 출발지는 김포공항이었다!

덕분에 공항 가는 내내 아빠의 "인천공항으로 갔으면 내가 울면서 아빠한테 다시 전화해서 급하게 아빠가 차를 돌려서 공항으로 돌아가 나를 태워서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생쑈를 했을 것"라는 상상 속 시나리오를 들어야 했다...공포스러웠다

 

환전신청도 인천공항으로 해놨었는데, 다행히 신한은행 은행원이 김포공항에서 받도록 해주었다.

 

또 비행기 보딩시간이 아니라 departure 시간에 맞춰 알람 맞추고 자고 있었는데

승무원이 깨워줘서 보딩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정말 럭키★한 하루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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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북경에서 샌프란시스코 가는 에어차이나 비행기가 지연되면서부터 나의 럭키가 깨졌다...☆

더군다나 나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12시에 민경이랑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는데

비행기가 한 시간 넘게 지연이 돼서 기다리고 있을 민경이한테 너무 미안했다ㅜㅜ

 

비행기가 심하게 지연되니 이제 샌프란시스코 내려서 수하물은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결론적으로 짐 분실은 없었다)

기다리며 검색해보니 에어차이나는 원래 지연으로 악명 높은 항공사였다.

다시는 에어차이나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예상치못한 항공편 지연으로 속이 쓰리긴 했지만,

 

그래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길이 좋았던 점은

태어나 처음으로 열 몇시간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봤다는 거였다.

 

누군가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낯설었지만, 틈틈이 일기를 쓰며 나와 대화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공항에서 혼자 조용히 주위 구경을 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또 나 혼자서도 다양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다행히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만난 민경이는 늦은 게 항공사 탓이지 내 탓이 아니라며 날 이해해줬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네가 여기 있는 게 안 믿긴다'는 말은 100번 정도 반복했다.

6개월 어학연수동안 새로운 사람들만 만나다가 한국의 익숙한 친구가 옆에 띡 나타나니 어색했나보다

 

덩달아 나도 미국에 와있다는 게 믿기지 않고 어색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에 왔으니 첫 밥으로 햄버거를 먹어주기로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하다는 수퍼두퍼버거를 먹으러 나왔다

 

사실 난 가만히 있었는데 민경이가 알아서 검색해서 여기가 제일 유명하다고하며 데리고 갔다

이 때부터 민경이의 맛집 캐리가 시작됐다.

 

 

 

 

미니버거 두 개에 유명하다는 갈릭 프라이도 시켰다

햄버거에서는 구운 양파 냄새가 강하게 나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갈릭 프라이는 감자튀김 위에 갈릭치즈를 갈아서 뿌려주는 것 같은데 그 토핑이 너무 맛있었다

 

민경이는 원래 햄버거 먹으면 속이 안 좋아지는데 슈퍼두퍼 버거를 먹고나서는 건강한 맛이어서 하나도 그런게 없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둔해서 그냥 맛있었지, 패티가 어쨌는지 건강한 맛이었는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나와서는 유니언스퀘어 중심을 구경했다.

'유니언스퀘어'라고 해서 기대했으나 그 자체는 그냥 공터이고

스퀘어 중심을 둘러싼 건물들이 예뻤고 그 주변에 유명한 매장들도 많았다. 

 

샌프란시스코 첫인상은

1. 예쁘고 큰 건물들이 많다. (유니언스퀘어쪽밖에 안둘러봤으니)

2. 해지니까 진짜 쌀쌀하다

3. 악취는 걱정보다는 덜 심하지만 그래도 길거리 구석구석 많이 난다

 

어느 정도냐면 서울 지하철에서 1년에 한 두번 맡을 노숙자냄새를 하루만에 5번 정도 맡은 듯 했다.

 

 

 

 

 

설레는 여행의 첫날 밤.

게스트하우스 1층에서 사온 간식이랑 맥주를 마셨다.

 

항공권 예매도 미루고 미뤘다보니 숙소도 일주일 전에 겨우 예약했다.

미국 홈리스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내가 홈리스일 뻔했지만

다행히 한인이 운영하는 SF게스트하우스에서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당연히 여행 계획도 짜지 못한 상태였는데,

그나마 다음날에는 빅버스투어를 예약해놔서 조금 편한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