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차 인턴일지
2018.9.19
혜윤언니가 점심먹고 찍어준 사진
‘몰고’라는 단어를 어제 처음 알게 됐다.
기사가 그대로 나가리 되는 걸 몰고라고 한단다.
내 기사는 어제 거의 완성 직전까지 갔다가
(제목도 짓고 선배한테 검토도 받았고 이미지도 첨부했음)
팀장님의 ‘최신성이 없다’는 말에
대시보드 상에서 ‘몰고’라는 제목으로 바뀌어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너무 슬펐다. ㅜㅜ
한창 취재 중이던 저번 주, 아니 월요일쯤에라도
빨리 다른 아이템으로 넘어가자고 말씀하셨으면 덜 슬펐을 텐데.
최신성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감정은 그렇지가 않아서 진짜 울 뻔 했다.
다른 기자 선배가 ‘앞으로 기사 엎어질 일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뭘 슬퍼하냐’고 했다.
그 말도 맞다. 기자가 되면 뉴스 공장처럼 뉴스를 뽑아낼 테고
아마 그 중에는 데스크를 못 통과하는 기사도 많을 건데,
작은 기사 하나가 날아간 걸로 크게 속상해하는
나는 아직 기자가 되려면 마음 수련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아무튼 갑작스럽게 새 아이템을 찾고 있는데
최신성, 시의성, 취재가능성, 확실한 야마 등등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참신한 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익명 커뮤니티랑 최신 뉴스를 계속 보면서 머리를 굴려본다.
주변 친구들한테도 아이템 내놓으라고 주기적으로 조르고 있다.
남자친구는 그 중에서도 나한테 아이템으로 제일 많이 들볶이는 사람이다.
어제는 전화하면서 내가 계속 아이템 고민하니까 자기도 생각하기 지쳤는지
‘기사 아이템 올라오는 사이트 없나?’라는 어이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리고 그런 게 있다 해도 훌륭한 기자님들이 이미 나보다 훨씬 빠르게 털었을 거다.
일지를 하루만 빨리 썼으면 하하호호 즐거운 얘기만 썼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한 문단이라도 밝은 이야기를 써보자면, 팀 선배들이 너무 좋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죠스 떡볶이에서 떡볶이타임을 했다.
남초 팀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다(우리 팀은 다섯 명 다 여자).
티타임이나 회의 마무리쯤에 선배들 잡담만 들어도 재미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한 선배 인터뷰를 따라나갔다.
같이 택시 타고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혹시나 팀장한테 말 못 하겠는 게 생기면 자기한테 말해도 된다.’,
‘언론사 입사 나이 때문에 조급할 필요 하나도 없다.’,
‘인터뷰 질문 기발하게 잘 생각했다.’ 등등 따듯한 말을 잔뜩 해주셨다. ♡
현직 기자랑 사적인 대화 기회가 있다는 게
인턴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굉장히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현직 기자 선배가 내 기사 검토해주는 것도 너무 좋다.
물론 검토 결과가 기사 몰고라는 게 굉장히 슬프지만… 8ㅅ8
아무튼 이 시간의 귀중함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아이템을 찾으러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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